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츠 폰 파펜 (문단 편집) === 총리 === [[1932년]] 6월, 어느 정당도 과반수 확보를 못하고 연정 또한 구성하지 못해 의회내각 구성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힌덴부르크는 대공황에 방황하는 [[하인리히 브뤼닝|브뤼닝]] 총리에 대한 신임을 거두고 파펜을 대통령 비상대권으로 총리에 임명했다. 듣보잡이었던 파펜이 총리가 된건 국방부 정무부서 정치군인 [[똥별]] [[쿠르트 폰 슐라이허|슐라이허]]의 추천(뒷공작) 때문이었다. 슐라이허와 파펜은 초급장교 시절 베프를 먹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실상은 슐라이허가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허수아비로 젊은 시절 베프였던 파펜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때 슐라이허의 국방부 부하가 저런 하찮고 머리 딸리는 인간을 어떻게 추천하냐는 질문에 슐라이허 왈 "'''그는 머리가 필요 없어. 모자니깐!'''"이라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러나 파펜에겐 누구도 알지 못했던 최대의 재능이 있었다. '''바로 [[아부]] 떨기와 [[비위]] 맞추기'''. 마누라도 친구도 없던 뒷방 노인신세였던 팔순 노인 힌덴부르크에게 큰 신임을 받은 파펜은 슐라이허와 점점 따로 놀면서 권력 기반을 굳혀나간다. 당시 주독 [[프랑스]] 대사 프랑수아 퐁셰도 역시 그렇게 서술했다. > 그는 [[원수]][* 힌덴부르크를 의미한다.]가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생기 발랄하고 유쾌한 언행으로 [[파울 폰 힌덴부르크|이 늙은이]]를 즐겁게 했고, 존경과 헌신을 보여 그의 마음을 샀으며, 대담함으로 그를 기쁘게 했다. 힌덴부르크 눈엔 파펜이 완벽한 [[신사]]였다. 그러나 퐁셰는 파펜에 대해서 이렇게 꿰뚫어보고 있었다. > 진지하지 못하며, 천박하고 [[이간질]]이나 잘하는 이. 사람을 잘 속이고 출세욕이 강하며, 교활하고 낯두꺼운데, '''자신은 그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모든 내기를 받아 들이는 탓에 ''' 절대 위험한 일을 맡으면 안 될 사람이다."''' 또 [[영국]] 대사 호러스 럼볼드 경은 파펜이 총리에서 짤린 [[1933년]] 1월 파펜과 만나고 나서 "이 거대한 나라의 운명을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렇게 '''무게 없는 사람'''이 짊어지고 있었다니 놀랍다."고 평했으며, 전후 [[서독]]의 [[독일 총리|총리]]가 되는 [[콘라트 아데나워]]는 "나는 늘 그의 수많은 한계를 감안해 정상을 참작하는 '은전'을 베풀었다." 라고 회상했다. 보수적인 파펜 내각은 각료 중에 11명중 7명이 [[귀족]]이라 '''[[남작]]님 내각'''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나머지 2명은 재벌회장이었고, 1명은 슐라이허 장군이었다. [[프랑스]] 대사 퐁셰는 회고록에서 당시 상황을 "아무도 믿고 싶어 하지 않았고 나중에 사실로 확인되자 다들 웃거나 실소했다"라고 적었다. 총리 파펜, 내무장관 가일, 국방장관 슐라이허의 삼두정치는 [[프로이센주]]의 [[독일 사회민주당|사회민주당]] 정부의 숨통을 끊어놓으려 했는데, 특히 [[동프로이센]]의 토지귀족 [[융커]]의 이익을 대변하는 가일은 [[독일 사회민주당|사민당]]과는 천적관계였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 파펜은 '''당의 동의 없이 총리직을 수락하여, 슐라이허와 작당해 [[하인리히 브뤼닝|브뤼닝]] 전 총리를 중상모략했다고 의심받아 현직 총리임에도 [[가톨릭 중앙당|출신당]]에서 쫓겨난 상태'''였다. 무엇보다 [[대공황]]으로 [[실업자]]는 600만에 달하는데 실업수당이 너무 아깝다고 수령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제한하고 [[노동자]]의 동의 없이 사업주가 임금을 깎을수 있도록 추진하는 바람에 재벌에 언론사 사주이자 우파 [[독일 국가인민당]]의 당수인 알프레트 후겐베르크만 열광하고 다른 우파정당 사이에서도 '''노동자의 적'''으로 찍힐까봐 버림받았다. 이렇게 파펜은 몇달 안되는 임기 기간동안 별 실력도 지지도 없는 주제에 '''목표는 독재다'''란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데다가, 자신을 [[오토 폰 비스마르크|비스마르크]]에 비유하며, 비스마르크도 헌법을 무시하며 통치했다며 [[바이마르 헌법]]을 지키지 않겠다고 대놓고 선언하고 헌법을 제국시대처럼 권위적이고 보수적으로 뜯어 고치려고 시도하는 등[* 의석수 3분의 2가 동의해야 가능하다.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걸 고집했던 것.] 온갖 실책을 저질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